[책읽기]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참 많습니다. 해장용 식사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 아주 오래 전에 TV CF를 통해 보았던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베트남 아가씨, 용이 내린 것만 같다고 하는 하롱베이,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처녀들, 그리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베트남 전쟁. 베트남에 여행도 출장도 갈 일이 없었는데, 2017년 11월 말에 고객사와의 Design Thinking Workshop 덕분에 처음 베트남 하노이에 발을 디뎌 보았습니다.
바쁘기도 했지만, 무심히 베트남은 한국 서울보다는 따뜻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여름바지에 반팔옷만 잔뜩 가져갔다가, 정작 한두벌도 안되는 긴옷을 3일간 입고 다니면서 '무진장 춥네'라며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방문해 본 베트남인터라, 공항에서 고객사 공장까지 한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두리번 거리면서 열심히 보았습니다.
태국에 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번화한 중심부를 볼 때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못지 않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나라의 기업 로고보다 우리나라 기업들(롯데, CJ, 포스코 건설, 삼성 등)의 로고들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음도 느끼고 뿌듯했고요,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서 배터지게 진수성찬을 먹고도 가격이 비싸지 않음을 느끼면서 여기 짱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여기 아파트 한 채 사 놓고, 나이들면 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 발 늦었네라고 아쉬어했습니다. 오토바이로 가득 메운 길거리를 보면서 중국 도시에 온 느낌도 들었고, 우버로 부르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아하! 하면서 웃기도 했고, 작은 택시안에 4명이 구겨 앉아 교통체증 속에서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교통 인프라는 아직 갈길이 멀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아직도 머리속으로 잘 계산이 되지 않는 베트남 화폐(우리 원화도 숫자가 많이 붙어 있어, 외국인들이 놀라는데, 베트남 동으로 지불할 때에는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도 일행을 놀라게 했었고요.
짧은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했던 것은, 더 많이 알아야겠고, 더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두달 사이에 신천역 새마을시장에 들어와 있는 에모이, 분짜라붐을 가족과 함께 들렸고, 가족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가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베트남 펀드에 신규 가입을 했고요. 베트남이 성장하겠구나라는 믿음이 갔거든요. 그리고 다음 번 방문 이전에 베트남 공부 좀 하려고 책을 샀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서적은 많던데, 그 보다는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고른 책이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입니다.
이 책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베트남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하셨던 박낙종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쓰셨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책을 열어보았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베트남의 문화를 다루는 비중이 높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사람 살이이다보다, 역사, 정치, 경제 등과 떨어져 있을 수 없기에, 문화를 다루는 비중이 월등히 높지만 역사, 정치, 경제도 함께 다루어지고 있고,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 내용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트남 여자들의 생활력은 남자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합니다. 남자 실업자는 많아도, 여자들은 생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현지의 한국 공장에 갔었을 때에도 현장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자들이었고, 남자직원들은 별로 보지 못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네요. 1700년대에 베트남에 들어왔던 외국인들도 같은 보고를 했다고 하네요. 남자들은 담배 피우고, 차 마시고, 한가로이 떠들고, 술 마시고(술 소비량도 세계적이라네요. 동남아 2위, 세계 29위), 도박을 하는 동안에 가정을 꾸려갔던 것은 여자분들이라고 하네요. 중국 한나라를 패퇴시킨 쯩짝, 쯩니 자매를 비롯해서,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항전을 이끌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현지에서 직접 느껴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교육열도 높다고 합니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우방국 김일성은 전투기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호찌민은 전투기 대신에 베트남 젊은이들의 교육이나 잘 시켜달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전쟁 와중에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분명하게 해라, 국가는 여기 남아있는 우리가 지키겠으니, 너희들은 국가가 독립하면 돌아와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책 37페이지). 지도자가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철학이 바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런 교육열과 힘에 입어 베트남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꽃 보다는 돈이나 음식 처럼 실용적인 것을 찾을 것 같기도 한데, 마치 국가화처럼 여겨지는 연꽃을 비롯해서 백합, 장미, 서양란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삶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마음의 여유는 우리보다 훨씬 넉넉해 보입니다.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보니, 문화도 다양하다고 하네요. 토착 문화, 중국 문화, 인도 문화, 프랑스 문화가 함께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중국, 인도, 일본, 미국 등의 문화가 은근 섞여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을 듯 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인들이 많은 이유가 될 것도 같고요.
국토가 위아래로 길게 이어져있고, 광활하기도 하면서, 산도 많아서일까요, 소수민족도 많은데 소수민족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잘 공존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전쟁 속에서 소수민족의 도움 덕분에 호찌민이 살아남기도 했다고 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 많은 전통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유명하다는 수상인형극(수중인형극)은 다음에 베트남 가면 꼭 보렵니다. 우리의 민화와 같은 동호도 마음을 끕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관광지만 많은 것이 아니라, 지방별로도 특색있는 축제와 문화들이 많이 있네요.
다음 번 베트남 방문이 가족여행이 될지, 출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이틀이라도 시간을 내어 멋진 자연을 즐겨보고 싶습니다. 하노이로 가게 된다면, 바다의 하롱베이는 물론이지만,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한다는 땀꼭, 짱안이 있다는데 사진만 보아도 가보고 싶네요. 호찌민을 간다면 메콩강 투어, 구찌터널 투어도 하고 싶고요, 부모님 모시고는 다낭을 가보고 싶네요.
전쟁을 겪지 않은 젋은 사람들은 기성세대보다는 마음이 열려 있을 겁니다. 마음이 보다 열려 있다는 것이지, 기억과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전쟁이라는 것은 겪어보지도 못했지만,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죄는 커녕, 사과도 피하려드는 태도를 보면 분노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힘이 없고, 궁핍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갔을지 몰라도 우리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이중에는 사상의 차이를 떠나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가족의 경제적 삶을 위해 한국으로 시집온 처자들도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보다 조금 못 산다는 이유로, 말이 안통한다는 이유로 홀대 받아 자존심이 무너져가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오늘 신문 기사 중에는 베트남의 설 명절을 앞두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한국인 기업인들도 있어 베트남 노동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의 K-POP, 드라마, 영화가 널리 인기를 끌고, 화장품, 가전제품이 선호 받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자세가 바뀌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사돈지간의 국가라고 할 만큼 베트남과 가까와지고 있다면, 베트남을 아직은 저렴한 생산기지, 또는 물가가 저렴한 관광지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야 하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한 일들은 백번이라도 사과, 사죄해야 하고, 보상도 해야 하고, 베트남에 대한 이해도 넓이와 깊이를 가져가야 하고,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진짜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밑에 있는 저 섬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지요.
바쁘기도 했지만, 무심히 베트남은 한국 서울보다는 따뜻하겠지라는 마음으로 여름바지에 반팔옷만 잔뜩 가져갔다가, 정작 한두벌도 안되는 긴옷을 3일간 입고 다니면서 '무진장 춥네'라며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방문해 본 베트남인터라, 공항에서 고객사 공장까지 한시간 반 정도 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고개를 두리번 거리면서 열심히 보았습니다.
태국에 온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 번화한 중심부를 볼 때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못지 않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나라의 기업 로고보다 우리나라 기업들(롯데, CJ, 포스코 건설, 삼성 등)의 로고들이 자주 보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음도 느끼고 뿌듯했고요,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서 배터지게 진수성찬을 먹고도 가격이 비싸지 않음을 느끼면서 여기 짱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여기 아파트 한 채 사 놓고, 나이들면 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한 발 늦었네라고 아쉬어했습니다. 오토바이로 가득 메운 길거리를 보면서 중국 도시에 온 느낌도 들었고, 우버로 부르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아하! 하면서 웃기도 했고, 작은 택시안에 4명이 구겨 앉아 교통체증 속에서 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교통 인프라는 아직 갈길이 멀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아직도 머리속으로 잘 계산이 되지 않는 베트남 화폐(우리 원화도 숫자가 많이 붙어 있어, 외국인들이 놀라는데, 베트남 동으로 지불할 때에는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도 일행을 놀라게 했었고요.
짧은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했던 것은, 더 많이 알아야겠고, 더 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두달 사이에 신천역 새마을시장에 들어와 있는 에모이, 분짜라붐을 가족과 함께 들렸고, 가족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가보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에는 베트남 펀드에 신규 가입을 했고요. 베트남이 성장하겠구나라는 믿음이 갔거든요. 그리고 다음 번 방문 이전에 베트남 공부 좀 하려고 책을 샀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서적은 많던데, 그 보다는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고른 책이 "베트남 문화의 길을 걷다"입니다.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베트남 한국문화원장으로 재직하셨던 박낙종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쓰셨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책을 열어보았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베트남의 문화를 다루는 비중이 높습니다. 문화라는 것이 사람 살이이다보다, 역사, 정치, 경제 등과 떨어져 있을 수 없기에, 문화를 다루는 비중이 월등히 높지만 역사, 정치, 경제도 함께 다루어지고 있고,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 내용 중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트남 여자들의 생활력은 남자들보다 훨씬 강하다고 합니다. 남자 실업자는 많아도, 여자들은 생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실제로 현지의 한국 공장에 갔었을 때에도 현장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자들이었고, 남자직원들은 별로 보지 못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네요. 1700년대에 베트남에 들어왔던 외국인들도 같은 보고를 했다고 하네요. 남자들은 담배 피우고, 차 마시고, 한가로이 떠들고, 술 마시고(술 소비량도 세계적이라네요. 동남아 2위, 세계 29위), 도박을 하는 동안에 가정을 꾸려갔던 것은 여자분들이라고 하네요. 중국 한나라를 패퇴시킨 쯩짝, 쯩니 자매를 비롯해서,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항전을 이끌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현지에서 직접 느껴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만큼이나 교육열도 높다고 합니다. 1960~70년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우방국 김일성은 전투기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호찌민은 전투기 대신에 베트남 젊은이들의 교육이나 잘 시켜달라고 주문했다고 합니다. 전쟁 와중에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에게,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분명하게 해라, 국가는 여기 남아있는 우리가 지키겠으니, 너희들은 국가가 독립하면 돌아와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책 37페이지). 지도자가 갖고 있는 교육에 대한 철학이 바로 느껴집니다. 아마도 이런 교육열과 힘에 입어 베트남이 지금처럼 발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꽃 보다는 돈이나 음식 처럼 실용적인 것을 찾을 것 같기도 한데, 마치 국가화처럼 여겨지는 연꽃을 비롯해서 백합, 장미, 서양란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경제적인 삶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마음의 여유는 우리보다 훨씬 넉넉해 보입니다. 외세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보니, 문화도 다양하다고 하네요. 토착 문화, 중국 문화, 인도 문화, 프랑스 문화가 함께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중국, 인도, 일본, 미국 등의 문화가 은근 섞여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을 듯 합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시집오는 베트남인들이 많은 이유가 될 것도 같고요.
국토가 위아래로 길게 이어져있고, 광활하기도 하면서, 산도 많아서일까요, 소수민족도 많은데 소수민족을 배척하지 않고, 함께 잘 공존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전쟁 속에서 소수민족의 도움 덕분에 호찌민이 살아남기도 했다고 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 많은 전통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유명하다는 수상인형극(수중인형극)은 다음에 베트남 가면 꼭 보렵니다. 우리의 민화와 같은 동호도 마음을 끕니다. 빼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관광지만 많은 것이 아니라, 지방별로도 특색있는 축제와 문화들이 많이 있네요.
(출처: YouTube, 베트남 수중인형극)
다음 번 베트남 방문이 가족여행이 될지, 출장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루이틀이라도 시간을 내어 멋진 자연을 즐겨보고 싶습니다. 하노이로 가게 된다면, 바다의 하롱베이는 물론이지만, 육지의 하롱베이라고 한다는 땀꼭, 짱안이 있다는데 사진만 보아도 가보고 싶네요. 호찌민을 간다면 메콩강 투어, 구찌터널 투어도 하고 싶고요, 부모님 모시고는 다낭을 가보고 싶네요.
전쟁을 겪지 않은 젋은 사람들은 기성세대보다는 마음이 열려 있을 겁니다. 마음이 보다 열려 있다는 것이지, 기억과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이 글을 쓰는 전쟁이라는 것은 겪어보지도 못했지만, 일본이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죄는 커녕, 사과도 피하려드는 태도를 보면 분노하게 됩니다. 우리도 이러한데,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힘이 없고, 궁핍했기 때문에 전쟁에 나갔을지 몰라도 우리는 많은 베트남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았고, 이중에는 사상의 차이를 떠나 아무런 죄가 없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가족의 경제적 삶을 위해 한국으로 시집온 처자들도 많을 겁니다. 무엇보다 우리보다 조금 못 산다는 이유로, 말이 안통한다는 이유로 홀대 받아 자존심이 무너져가는 베트남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오늘 신문 기사 중에는 베트남의 설 명절을 앞두고,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야반도주하는 한국인 기업인들도 있어 베트남 노동자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의 K-POP, 드라마, 영화가 널리 인기를 끌고, 화장품, 가전제품이 선호 받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의 자세가 바뀌어야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사돈지간의 국가라고 할 만큼 베트남과 가까와지고 있다면, 베트남을 아직은 저렴한 생산기지, 또는 물가가 저렴한 관광지로 생각하는 수준을 넘어야 하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잘못한 일들은 백번이라도 사과, 사죄해야 하고, 보상도 해야 하고, 베트남에 대한 이해도 넓이와 깊이를 가져가야 하고,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진짜로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밑에 있는 저 섬나라 사람들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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