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 교수, W 이론, 그리고 디자인 씽킹 (시작)

"이 수업을 다 듣기 전까지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요즘이라면 격모독이라고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을지도 모르지만, 내 동기 친구들은 긴장감은 유지한채 웃음으로 넘겼다. 3학년 1학기 전공필수과목인 '인간공학'은 마치 젊은이들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군복무'와 같았고, 한 한기 동안의 수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면우 교수님의 독설이나 자부심을 모든 학생들이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도 평생에 기억에 남는 과목이면서 경험이었다.  

이면우 교수

"학교에서 전공수업을 통해  배우는 것들 사회 나가서 그대로 쓸 수 있는 것 별로 없다"고 말씀 주신 것도 기억난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기업은 공부 안하고 노는 곳도 아니고, 10-20년 묵은 교과서로 배우고 나가서는 폼 잡고 써먹을 생각도 하지도 말라", "문제를 어떻게 찾고, 정의하고, 풀어가야 하는지의 과정을 배워야 한다", "모르는 영역도 문제 해결을 위한 빠르게 그 수준을 올릴 수 있도록 공부하는 것도 훈련되어야 한다"고 하셨었다.  이 일련의 과정이 한 학기 동안의 수업, 퀴즈, 실험 속에 녹아져 있었다.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시며, 대학교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기업과 정부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화두와 처방을 던지셨었고, 이 중 기업의 경영 철학으로, 새롭게 일하는 방법으로 제시하신 것이  W이론이다.  

현재는 서울대에서 정년 퇴직하신 이후, UNIST(울산과기대)에 '디자인 & 인간공학과' 석좌교수로 계시는데, 옛날의 열정 그대로 학생들과 같이 작업도 하시고,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창의성'을 들고, 이에 대해 강의도 하고 계신다.    

"한국사회에서 모범생으로 길들여져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 들어간 학생들이 '창의성'과 가장 거리가 멀다. 수십년 동안 창의성과는 거리가 멀게 배우고 훈련받아 왔는데, 어느 날 불쑥 창의성을 발휘할 수는 없다." 라고 하시면서도,  한 번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 대상이 학생이든 기업체의 직원들이든 함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셨던 분이기도 하다.  




6.25 전쟁을 겪고 가난하기만 했던 시절에 미국 유학 다녀오신 분들은  미국의 모든 사례는 우리가 따라 배워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었다. 이런 분들이 학계, 산업계, 정치계 곳곳에서 리더로 자리 잡으셨었고, 뿌리깊은 미국을 향한 사대는 이렇게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 업체들이 한참 잘 나갈 때에는 속으로는 일본을 욕하면서도, 일본제품이라면 밥솥부터 워크맨, 지우개, 연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품을 사들이면서, 일본 제조업체들의 일하는 문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했었었다. 


이면우 교수님은 이런 분들과 많이 달랐다.  함인영 교수님처럼 우리 나라의 역사, 우리 나라의 멋, 우리 나라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셨고, 우리 제품의 Design에도, 우리 나라 기업의  경영 철학에도 장점을 녹여보시고자 노력하셨다. 예를 들어, 고품질의 스피커 디자인에 제주도 돌하루방의 이미지를 담으셨었고, 일품일조(한가지 제품으로 1조원의 매출을 해보자는 슬로건) 기치 하에 거북선, 고궁을 종이로 접고 만드는 제품을 직접 만드시기도 하셨었다. 

페이퍼 매직 (창덕궁)

지금 미국, 일본을 향한 이런 사대는 거의 없어진 것 같다. 틀어보면, 이제 마땅히 따라 배울 나라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남들 뭐하는지 염탐하고, 따라하는 시대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고 기업들도 느끼고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한 번에 성공, 또는 실패가 결정나지도 않는다. 제품이든 서비스이든 지속적 개선이 불가피하다. 

그건 그렇고, 이면우 교수님은 W 이론을 만드신 분이고,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과는 무슨 관계가 있기에?

'창의성'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20년, 30년 이후의 미래를 생각해서 유치원부터라도 교육 시스템을 뜯어 고쳐 놓아야 하겠고, 당장 우리는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길을 향해 발을 딛어야 하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법으로 발전해온 W이론, 그리고 IDEO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세계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는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 이 두가지 조합을 통해 적어도 남들이 쉽게 Copy 하지 못할 새로운 창의성 만들기가 시작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이다. 

산업공학, 경영과학 하시는 분들 사이에 고전적인 문제로 사료배합 문제라는 것이 있다. 소, 돼지를 키우는데, 필요한 영양분은 공급해야 하겠고, 옥수수, 콩과 같이 사료들은 가격은 물론이고 영양분 차이가 크니, 옥수수, 콩 등을 어떤 비율로 배합하면 가장 싼 가격으로 소, 돼지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지를 푸는 최적화 문제이다. 믿거나 말거나, 소, 돼지가 안 먹는단다. 왜? "맛이 없어서..." 

수학 문제 풀기 전에, 소, 돼지의 입장이 되어, 같이 먹어보면 그 느낌을 알거다라고 일갈을 하셨다. 한 마디로 탁상공론하지 말고, 현장에서 문제의 당사자가 되어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가라는 이야기이셨다.

모 전자업체에서 이상하게도 특정 시간대에 불량률이 올라간다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했던 사례도 기억에 남는다. 시계열로 보면 특정 시간대에 불량률이 올라간다. 주변에 열차가 지나가면서 진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 많은 사람들이 그저 주어진 데이터와 한정된 사람들(연구 과제를 준 사람들)과의 인터뷰에 그쳤고, 그 결과도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집요하게 현장에서 관찰하고, 인터뷰를 한 결과~ 원인은 남자 관리자였다. 조립라인의 여성 근로자들은 여름이라 덥다고 짧은 치마 또는 반바지를 입고 의자에 앉아 일을 하는데, 남자 관리자가 돌아보는 시간대가 되면, 혹여나 보일까 해서 자세를 바꾸고 긴장하다보니 불량률이 올라갔던 것이다. 문제가 보이니 해결책도 달라진다. 관리자들이 볼래야 볼 수 없도록 칸막이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끝~ 

전문가 불러서 Quality에 영향을 주는 모든 Factor를 열거해 놓고 하나하나 관리해갈 방법을 찾았던 것도 아니고,  불량이 나면 원인을 추적해보자는 시스템을 만들었던 것도 아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고객도 아닌, 전문성도 없고 문제와는 동떨어진 사람들 모아놓고 brainstorming을 했던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면, 열정이 있었다.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열정~ . 그리고 완성된 솔루션을 내놓기까지의 timeline은 훨씬 짧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해내기 위해서, 밤샘 작업을 밥 먹듯이 했다. 

"철야, 밤샘은 집중력은 유지하면서 일하는 시간을 늘려 문제를 풀자는 것이지, 새벽까지 일했다고 아침에 자거나, 꾸벅꾸벅 졸거면 할 이유도 없다."

요즘 젊은 분들은 황당해할지 모르겠지만, 그 때에는 당연하게들 생각했었다. 선진국가의 대학교나 기업은 우리보다 연구자금도 넉넉하고, 인력도 많고, 쌓아놓은 경험도 많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기에 더 노력해야 해야 한다고 믿었었다.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남들 잘 때에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하고, 더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었었다. 90년대 초에도 전기자동차 이야기를 했었는데, 당시에는 우리의 완성차 수준도 형편없었던터라, 해외 자동차 업체들은 전기자동차를 시장에 내놓으라고 하고, 우리는 고속충전기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OECD 국가 중 GDP 대비 R&D 투자 비중으로만 보면 1등으로 투자를 많이 한단다.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우후죽순처럼 스타트업들이 생겼거나 생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공계 출신들의 처후가 개선된 것도 아니며, 삼성전자 정도 제외하면 대기업 중에서 과거 10년을 비교하여 위상이 달라져 있는 곳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 많은 투자비는 어디에 갔을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창의성 만들기로 유명한 기존의 두가지 이론을 돌이켜보고, 지금보다 나을지 안나을지는 모르지만 다른 길도 한 번쯤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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