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오미 쇼크, 레이쥔

대륙의 실수라 불리는 제품들, 즉 가격은 저렴한데, 제품의 디자인과 품질은 워낙 좋다보니, 이것이 실수가 아니겠냐고 불리는 제품들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 바로 샤오미이다.

샤오미에서 나온 보조배터리, 체중계(미 스케일), 이어폰(피스톤 시리즈), 미밴드, 무선공유기 등은 국내에서도 널리 판매되고 있고, 중국내에서 돌풍을 일으킨 휴대폰 OS, 휴대폰을 비롯해, 가격 대비 엄청난 기능과 품질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공기 청정기, 에어콘, TV, 멀티탭, 드론을 비롯해 내년에 선보인다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비롯해 제품 종류의 다양함에도 혀를 내두르게 된다. 주위에서도 애플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애플 팬들처럼, 미펀이라 불리우는 샤오미의 팬들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제품이라면 짝퉁이라고 폄하하거나, 겉은 번지르보여도 내구성이 없거나, 자세히 보면 디자인이나 품질이 확 떨어진다는 인식이 지배했었는데, 지금은 샤오미 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제품들은 우리 대표 기업의 제품들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아날로그 제품이 디지털 제품으로 바뀌는 즈음, 일본 기업을 밀어내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판을 바꾸었던  것만큼이나 극적이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지금 고전하고 있는 일본가전 업체를 보는 것과 같은 걱정으로 우리기업을 쳐다보게 된다.

샤오미(Xiami)의 제품이 유명세를 타는 만큼, 창립자인 레이쥔과 샤오미라는 기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관심이 안 갈 수 없다. 그래서 잡았던 몇 권의 책 중, 창업자로서 사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레이쥔에 대한 책을 먼저 읽어보았다.


젊어보이기는 하던데, 레이쥔은 1969년 12월생이라고 하니, 딱 내 또래이다. 보통 사업에 천재성을 발휘해왔던 인물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을 못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달고 있는데 반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모범생으로 성적도 우수하고, 바둑도 좋아하고, 시와 사도 좋아했다고 한다. 칭화 대학, 베이징 대학을 가고도 남을 만큼의 대학입학 성적을 얻었는데, 우한 대학을 갔다고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 잘 안 알려져 있는 대학이기는 한데, 인문대와 공대가 유명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다닌다고 하고, 벚꽃이 유명하며, 사우나에 온 것처럼 더운 날씨에, 열대식물들이 늘 자란다고 한다. 지도로 찾아보니,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남쪽에 위치해 있기는 하다.) 심지어 대학생활도 엄청나게 부지런했는데, 아침 7시면 강의실에 도착해서 좋은 자리에서 공부와 수업을 시작하고, 주말에도 자습을 한 후에 취미인 영화구경을 갔다고 하니, 지독히도 자기 절제와 관리가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런 공부벌레에게 인생의 꿈을 심어준 책이 있었으니, "실리콘밸리의 불"이라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스티브잡스를 알게 되고, 레이쥔으로 하여금 본인도 세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나닷컴의 창업자도 같은 책을 읽고 인생의 꿈에 불을 지폈다고 한다. 대학 입학 당시면, 87년 정도 되었을 때이니, 당시 우한 대학 컴퓨터실에 PC가 15대가 안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그 보다 사정은 조금 더 낫기는 했지만, 사실 충분히 PC가 보급되지 않았었고, IBM, VAX 머신으로 FORTRAN 숙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때부터 컴퓨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로 교수님들의 총애를 받으면서, 교수 연구실의 PC를 가지고 공부를 해나가고, 전자상가를 돌면서 현장 기술자들과 교류하고,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이미 80년대 말부터 상황은 비슷했던 것 같다. 다만 우리보다 빨리 IT 분야에 대한 창업 열기가 불었던 것 같다. "학문의 바다에서 경험을 쌓아 우한 실리콘밸리를 건설해 보세", "북쪽에는 중관촌이 있고, 남쪽에는 광부툰이 있다" 등 우한에도 IT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기회를 바라보았던 인물들(예; 아래아 한글의 이찬진, 백신으로 유명세를 떨친 안철수)도 있었지만, 당시의 PC(XT, AT)로는 주로 워드프로세싱 작업과 DBaseIII로 간이 프로그램 짜다가, 결국은 테트리스나 PC통신에 빠져 살던 나를 포함한 대다수 동세대 인물로서는 쪽팔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섭렵하던 레이쥔은 암호설정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기존 소프트웨어 업체에 판매를 하면서 돈을 벌게 되고, 백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메모리 최적화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써 유명세를 타게 된다. 중국어를 지원하는 한자카드를 개발하는 벤처를 차렸다가 해산하기도 하고, (IT 시대에는 국경이 없다더니, 정말로 우리나라의 80년대 후반 모습과 판박이로 동일하기만 하다) 1992년 킹소프트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 킹소프트는 중국내의 소프트웨어 리딩업체로 WPS1.0 (중국어를 지원하는 워드프로세서)가 주력 상품이었다고 한다. 우리로 보면 한글과 컴퓨터와 같은 회사였으리라. MS도 한동안은 중국에서 WPS1.0의 아성을 넘지 못하다가, MS Windows의 출시와 더불어 WPS1.0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고 한다. 상당기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킹소프트는 Windows에서 운영되는 WPS97을 출시하고,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시장을 확보해갔다고 한다. (이 또한 우리 나라 사정과 판박이로 같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한국에 인터넷 바람이 불어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중국에도 똑같이 인터넷 바람이 불었고, 레이쥔은 프로그램 다운로드 사이트인 조요닷컴을 설립했는데, 나중에는 전자상거래로 그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했다고 한다. B2C가 주력이었는데, 중국사람들은 뭔가 하나 유행이 불면 모두 따라산다는 패턴에 착안해서 소량의 우수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원칙을 만들어 가게 되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인터넷 거품이 빠지고, 조요닷컴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2003년에야 약간의 이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킹소프트가 출자한 회사이기 때문에 유명세를 얻은 것도 있겠지만, 2004년 8월 아마존에 조요닷컴을 매각했다고 한다. 책에는 7,500만불이라고 하는데, 열정을 다해 사업을 꾸려가던 레이쥔 등은 중국의 아아마존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게 된 것이라 만감이 교차했다고는 하는데, 결과적으로 여기에서 큰 자본을 만들게 된다. (당시 한국에서도 닷컴의 시장가치가 치솟고 있었을 때에 현금화를 했던 사업가들은 그나마 재기의 꿈을 가져볼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대다수의 사업가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까지 갔었던 기억이 난다.)

한쪽에서는 전자상거래에 불을 지피는 동안, 킹소프트에서 레이쥔은 백신소프트웨어 개발을 이끌고, 게임을 이끌었다고 한다. 모든 사업 아이템이 성공한 것도 아니고, 오피스 제품처럼 참패한 아이템도 있었던터라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킹소프트도 그 사이에 경영난을 겪으면서 자본수혈을 받게 되는데, 이 과정 중에 레이쥔은 29살에 사장이 되어 킹소프트를 이끌게 되었다 한다. 특히 이후 게임에 집중하여, 킹소프트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가면서, 2007년 9월 말 홍콩거래소에 상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먹튀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보이지만) 12월에는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을 사퇴하고, 휴식기에 접어든다.

30대 후반에 상당한 돈도 벌었고, 은퇴한다고 치고, 놀고 지낼 법하기도 하겠지만, 레이쥔은 새롭게 변신을 도모한다. 엔젤투자가로서의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투자 이전에 여러가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뒤에서 돕기도 했겠지만, "투자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다"라는 원칙을 지켜서, 사람과 사업 아이템 중에서 사람을 보다 중요하게 보고 투자를 진행했다고 한다. 레이쥔이 가져갔던 원칙이 몇 가지 소개 되어 있는데 (1) 사용자의 수요를 꿰뚫어볼 수 있고, 시장에 대해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2) 뜻은 높고 멀리 두면서 현실에 발을 붙이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3) 가장 좋은 것은 2~3명이 서로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창업하는 것이다. (4) 기술이 뛰어남과 동시에 팀을 이끌 수 있는 기술 리더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인터넷 사업의 경우), (5) 로우 코스트 상황 하에서 빠르게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6) 경력이 뛰어난 사람이 우선한다. 예를 들면 창업 성공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점수를 준다. 40대가 되기 전, 3년 동안 레이쥔은 20여개 이상의 회사에 투자해서, 기업가치가 200억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투자가로서의 성공도 성공이지만, 이 때에 투자해서 쌓은 인맥, 투자를 통해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게 된 눈, 투자를 통해 확보한 기술은 나중에 샤오미의 큰 기반이 된다.

40세가 된 레이쥔은 스마트폰 사업에 꿈을 갖고 드림팀을 구성하게 된다. 2010년 4월 샤오미테크를 설립하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먼저 MIUI 운영 시스템을 개발한다. 2010년 8월 MIUI의 내부 테스트 버전을 출시하고, 1년 만에 50만명의 팬을 끌어들인다. 2011년 8월에는 MIUI 탄생 1주년을 맞아 스마트폰 한정판을 세상에 출시한다. 이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최고 사양의 제품을 최저의 가격에 온라인 채널을 통해 판매해가며 승승장구 하고, 제품 라인업을 계속적으로 확대해 가게 된다. (스마트폰을 담는 작은 케이스에 들인 노력부터, 스마트폰의 품질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 스마트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마케팅 등 샤오미에 대해 알려진 사례들은 또 다른 책에 잘 정리되어 있으니, 그 때에 이야기하고자 한다.) 샤오미 폰의 판매량은, 2011년 30만대, 2012년 719만대, 2013년 1,870만대, 2014년에는 6,112만대에 이른다고 한다. 기업가치도 2010년 2억5,000만달러, 2011년 10억달러, 2012년 40억달러, 2013년 100억달러, 2014년 45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상장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하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다양한 제품을 세상에 쏟아내고 있다.

아직 40대 중반에 불과하고, 짝퉁 스티브잡스라 불리우기도 하지만, 샤오미의 제품과 샤오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 애플이나 삼성전자도 조만간 샤오미에 눌릴 것만 같다. 게다가 전기차를 비롯한 자동차 시장에도 샤오미가 진출할 것이라 전망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혁신의 속도를 보건데,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 같다. 부럽기도 하고, 이러다가 중국어 공부하면서 샤오미에 취직해야 할 날이 올 것 같기도 하다.

스티브잡스를 보면 한 사람의 광기 어린 천재를 떠올리게 되지만, 레이쥔을 보면 노력가이면서 절묘하게 사람을 잘 선발해서 팀을 이끌어가는 기술경영인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특히나 "태풍의 길목에 서면 돼지도 날 수 있다"라는 그의 이야기는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굵고 힘있는 트렌드를 찾아내고, 그 트렌드 내에서 살아가라는 교훈이 느껴진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레이쥔은 이미 짝퉁 스티브잡스, 즉 레이잡스를 넘어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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