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보니,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책은 2학기의 늦여름 첫 강의를 시작으로, 눈내리는 겨울 마지막 강의와 함께 한 해를 보내는 것과 사못 비슷한 분위기이다. 실제 강의내용을 녹취한 후에, 그 내용을 다듬었다고 하시는데, 그래서인지 눈 앞에서 찬찬한 목소리로 강의를 하시는 듯한 느낌이 절로 난다. 

책은 크게 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파트에서는, 중국 역사 흐름의 순서를 따라 주역을 시작으로 유명한 고전의 개괄과 함께 특정 내용을 뽑아 그 의미를 되새겨보고 있으며, 두번째 파트는 신영복 선생님께서 수형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주시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부라는 것의 대상은 세상(세계 인식)과 사람(자기 성찰)이라고 하셨는데, 첫번째 파트가 세상을 향해 있다면, 두번째 파트는 사람을 향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강의 내용을 따라 읽어가다보니, 너무나 어렵게 느껴지고 진작에 한번도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고전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겨버렸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한자를 읽고, 써볼 기회가 없다 보니, 본듯한 글자인데 의미나 그 독음이 기억나지 않는 글자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 고전을 찬찬히 음미해보는 시간도 갖고, 한자 공부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긴다.

주옥같은 내용과 해설이 많고, 정독을 한다고는 했지만,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겨버린 어려운 부분들도 있고, (머리에 담아본다고 했지만 가슴으로 이어지고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한채 망막속에 활자를 찍어대다보니) 금새 잊어버린 내용들도 많아, 다음 달에 다시 재수강해야겠다는(=찬찬히 다시 읽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형광펜으로 그어 놓은 구절을 다시 찾아가보니 너무나 많아, 감히 몇 개를 고를 수조차 없다. 그만큼 선생님의 말씀이 느낌, 울림을 많이 주었다. 사실 두번째 파트는 선생님의 이야기, 옥살이에서 만난 감방동료들의 이야기들인데, 직접 겪으신 이야기들인터라 그 생생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저 앞 부분에서만 몇 개 발췌해보면서, 다시 정독(재수강)할 것을 다짐해본다. 정독 후에 블로그 글도 다시 쓰려고 한다.

....... 

"생생불식,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온고보다 창신이 여러분의 본령입니다. 그리고 강의라는 프레임도 허물어야 합니다. 학부 강의에서 가장 불편한 것이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강의라는 틀입니다. 문제 중심이어야 하고, 정답이 있어야 합니다. 개념과 논리 중심의 선형적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의 파편입니다. 세상은 조각 모음이 아니고 또 줄 세울 수도 없습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고 하는 추상력과 상상력의 조화입니다. 추상은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압축하는 것이고, 상상력은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을 읽어 내는 것입니다. 문사철이 바로 개념과 논리로 압축하는 것입니다. ..."

"... 귀곡자는 "병법은 병사의 배치이고, 시는 언어의 배치이다"라고 했습니다. 병사의 배치가 전투력을 좌우하듯이, 언어의 배치가 설득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

"... 화동 담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쟁을 통한 병합을 반대하고 큰 나라 작은 나라, 강한 나라 약한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화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입니다. 반면에 동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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