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역설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 매일마다 Yahoo Finance 또는 국내 포털의 금융면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 달러기준의 환율이다. 미국은행 계좌의 돈이 떨어져가면, 한국 통장에 있는 돈을 환전해서 쓰고 있다보니, 환율 변화에 신경이 안쓰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작년, 그러니까 2014년 초여름에는 1달러에 1,000원대 초반이었고, 국내 경제연구소에서는 모두 1,000원대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장담을 했고, 신문에는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정부의 인위적 개입을 통해서라도 환율이 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호들갑이 이어졌었다. 그런데, 정작 미국에 와서 생활하면서는 환율이 떨어질 생각은 안하고, 오히려 올라가기만 한다. 작년 언제쯤인가 1,070원 정도로 환율이 올랐을 때에, 기다리지 말고 1,050원대에서 환전해둘 걸이라면서 잠시 후회했던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1,100원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살짝 움직이고 있다. 도대체, 1,000원을 깨고 갈 것이라고 주장하던 기관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했었는지, 또 한참 바닥을 파고 들어가던 환율이 1,100원을 훌쩍 넘은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금리인상과 함께 금융권에 소용돌이가 치면서 환율이 팍팍 올라갈 것이라는 이야기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데,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곳곳을 벌집 쑤신 것처럼 휘젓고 돌아다닐 때에, 애꿋게도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의 환율이 천정을 모르고 올라간 일이 있었다. 당시를 전후로 미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재정부실이 심하다보니, 일부 주정부를 비롯해 연방정부가 부도에 직면했다는 기사가 쏟아졌었다. 무역면에서도 매년 기록적인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빚내서 빚갚기를 하고 있는 미국은 철없는 동네 형아같은 존재였다. 여기에 금융위기까지 일으켜놓고는, 돈을 찍어내서 뿌려대기까지 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면, 언제 부도날지 모르는 국가의 통화인데다, 돈까지 찍어내기 미국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2014년, 2015년을 지내면서 보니, 미국은 그나마 경제가 살아났다는 등, 실업률이 줄어들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럽, 중국, 일본 등은 상황이 여전히 안좋거나 더 안좋아졌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미국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나머지 메이저 경제권이나 국가들의 통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돈을 찍어냈으니, 돈 값어치가 떨어져야 정상인데, 왜 값어치는 더 올라가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돈을 찍어내어 남발을 했다는데, 왜 2%인가 하는 목표 인플레이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신기한 것은 이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던 기름값이 어느날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반토막도 더 났다. 배럴달 $50이면, 정말 물값보다 싸진 듯한 느낌인데, $30까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아무리 수요는 줄고, 공급이 유지되다보니 기름값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 낙폭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름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금값도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금태환을 포기한지 오래라고 하지만, 금이라고 하면 현금화가 매우 쉬운 정도를 넘어, 현금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금속이다. 오죽하면, 90년대말 외환위기 때에 집 구석에 숨겨놓은 금반지, 금목걸이 등을 모두 들고나와 빚갚기에 동참했었을까? 금의 채굴량은 어느정도 한계에 도달하고 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의 양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미국, 유럽, 중국, 일본이 돈을 찍어냈으니, 금과 화폐간의 교환비율은 이전보다 높아져서 소위 화폐로 환산한 금값은 올라줘야 정산인데, 최근 몇 년간의 금값을 보면 빌빌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고, 요즘에는 누가 찍어누르는 긋이 온스당 $1,200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각설하고, 재정적자에 경상수지 적자까지 천문학적인 쌍동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그 나라에서 발행하고 있는 달러라는 화폐가 있는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달러의 가치는 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러 달러의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이 기이한 현상의 이면을 살펴보고자 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런 유형의 책에는 전문가들이 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서적이 있는가 하면, 음모론을 들추는 책들도 있는데, 이 두가지 관점을 벗어나 가능한 쉽게 설명한 책이 이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책 읽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역설에 대해 저는 여러가지 각도로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기억나는 것만 몇 가지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 미국이 비록 빚더미에 앉아 있고, 그 빚이 계속 늘어나고는 있지만, 이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채권을 들고 있는 유럽,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를 포기하지 못하는 대마불사의 형국이다. 2) 국제적으로 통용가능한 통화, 소위 기축통화의 대안을 찾아보려고 해도, 불안불안함 속에서 언제 깨질지 모르는 EU의 유로도 탈락이요, 어마어마한 재정적자와 디플레이션에서 헤매고 있는 일본의 유로는 힘도 없고, 규모도 작아 탈락이요, 비록 덩치는 크다고 하나 신인도가 높지 않으며, 언제 버블이 깨질지 모르는 중국도 탈락이라는 것이다. 3)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 정치적 파워가 워낙 공고하고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축통화로 굴림해온 관성이라는 것도 있다. 미국이 쉐일오일이라는 자원조차 추가해서 들고 있는터라, 기존에 미국과 그닥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산유국들도 언제든지 손보아줄 수 있는 힘까지 갖게 된 상황이다. 뭐 이런 유형의 힘이 더해지다보니,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은 기축통화로서의 힘을 갖게 될 것이며, 미국달러의 강세도 어느정도 선에서는 미국 입장에서 도움이 되기 때문에(예를 들어, 빚을 계속 내어 살려면,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여야 한다) 달러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 외에 점점 더 과거보다 빈번해지고 있는 금융위기, 외환위기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다루고 있는데, 힘 없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그지 없다. 아울러 통화 발행을 남발하다보니, 글로벌하게 주식시장을 비롯해서 자산의 버블이 빵빵하게 커졌다는 경고도 함께 담고 있다. 심지어 shadow 금융을 비롯해,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버블이 미국의 금융위기 전보다 더 커졌다고도 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면, 어김없이 미국의 주변국들이 한 바탕 홍역을 치렀던터라, 90년대 외환위기를 당해보고,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도 맞아본 우리로서는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상황이다. 거기다 부정으로 일관하던 정부조차, 우리나라의 가계부채와 공공부분의 부채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금리를 낮추거나 해서 버블 만들기에 동참하겠다고 하는 상황인만큼, 아이들이 힘껏 불어제껴서 한참 부풀어오르는 풍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버블은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라고 하고, 이번 풍선이 터지면 훨썬 더 그 충격이 클 것이라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조언이 없는터라,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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