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억
한 마디로 요약하면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 어떤 이에게는 과거와 현재, 어떤 이에게는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신비한 편지함이 있는 나미야 잡화점이 공간적 중심에 있고, 전혀 관계가 없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편지를 통해 고민을 전달하고, 진심어린 상담을 해주는 내용들이 맛있는 비빔밥처럼 잘 엮어져 있다.
시간을 뛰어넘는 편지함 또는 편지통은 이미 다른 영화를 통해서도 친숙한 소재이다. 예를 들어, 전지현, 이정재가 나온 시월애가 떠오른다. 그리고 비슷한 영화를 본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안난다. ^^
편지함이 있으니, 당연히 편지도 있어야 하겠다. e-mail이 워낙 흔해져서인지, 편지라는 단어만으로도 웬지 뭉클한 느낌이 든다. 시월애에서 전지현과 이정재가 주고 받는 편지, 동명이인에게 잘못 배달된 편지 덕분에 잊었던 옛사랑을 곱씹어 보게 된 러브레터, 부인과 사별한 톰행크스의 라디오방송을 듣고 맥라이언이 보낸 편지가 인연이 되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운명적 만남을 갖게 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편지는 연인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담고들 있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편지함, 사랑을 담은 편지는 진부한 소재 같은 느낌도 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설정과 편지를 통한 상담은 다분히 동양적이고, 어쩌면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작은 행동과 말 한 마디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영향이 결국 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인연의 네트워크'.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이 있을 때에, 이를 기꺼이 함께 들어주고 나누어주려는 따뜻한 마음. 맨날 경쟁만을 강조하는 세상에 살다보니,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은 바로 인연이라는 네트워크와 상대를 포용해주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문득 사회생활에서 만난 멋진 분이 던진 질문이 생각난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학교가기 싫다고 하고, 선생님이 싫다고 할 때에, 부모는 어떻게 대답하고 아이와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
같이 선생님을 욕하거나, 그럼 학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땡~
왜 아이가 화를 내는지 그 원인부터 파고 들어가고자 아이에게 질문을 쏟아붓는 것도 땡~ 감정적인 동의와 긍정이 첫 번째이고, 상대방과 감정적 교감이 이루어진 후에, 차근차근 그 원인을 파악하고, 아이가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이를 알려주고, 선생님이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이 어떤 부분은 잘못하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옳바른 상담이라는 것이다. 예륻 들어,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많이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구나. 맞지?" 로부터 출발하라는 것이다.
반대로 이를 직장생활에 대입해보면, 직원이 뭔가를 잘못해서 상사로부터 또는 고객으로부터 야단내지 비난을 듣고 씩씩거리고 있던지 아니면 풀이 죽어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상사나 고객처럼, 똑 같이 또는 한 수를 더 떠서, 첫 마디부터 "네가 잘못했다" 또는 "어쩌자고 일을 그 따위로 하느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제대로 안되서 많이 속상하겠다"라는 감정적 동의부터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적 측면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누군가 괴롭고, 힘들고, 외로울 때에 삼당을 위해 찾아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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