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소설로도 유명했었고, 영화를 통해 그 내용도 많이 알려졌으리라. 이런 이유로 어떤 내용인지 요약하거나 슬쩍 소개하는 것은 필요없을 것 같다. 제목처럼 야간열차타고, 정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생경한 도시로 훌쩍 떠나보고 싶은데... 이 책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만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양대 주인공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프라두. 그는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총명했는데,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 그 정도가 잉크까지 쪽쪽 빨아들여 책에 아무것도 남는다."라는 듯한 표현이 종종 나온다. '잉크까지 먹는다', '잉크를 빨아들인다'라는 유형의 표현은 어디에서 본 일이 없는 대단한 표현이지만, 이러한 묘사를 달고 사는 주인공 프라두는 얼마나 대단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책을 읽고 나서도 잊는 내용도 많고, 애시당초 놓치는 내용도 많다보니, 프라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2) 배경이 되는 포루투갈의 독재와 항쟁이다. 포루투갈에도 이런 독재가 있었던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이라 하여, 40년 가까이 지속된 살라자르의 독재, 포루투갈의 식민지 탄압에 대한 반발로 청년장교들을 중심으로 무혈혁명을 성공시킨바 있었다고 한다. 혁명의 성공을 안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나누어주고, 군인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꽃아 화답했다고 하니, 그 감동이 어떠했겠는가? 고인물을 썪게 마련이라고, 살라자르 독재시대에 권력을 가진 집단은 부정부패를 일삼았을 것이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을 것이다. 이런 탄압과 고문을 일삼던 비밀경찰의 대장 격으로 잠시 등장하는 '멘데스'. 우리나라에도 학생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을 이끌고 참여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물고문을 비롯한 갖은 고문으로 불구를 만들고, 사람을 죽인 그런 정권의 '개'를 자처한 개같은 인간들도 있었지 않았던가?
3) 직업 윤리와 갈등~ 프라두가 진료를 마치고 잠을 자고 있는데, 응급환자가 있다고 한다. 모든 시민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저주해 마지 않는 '멘데스'가 바로 그 응급환자. 잠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프라두는 응급조치를 취해 그가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이로 인해 프라두를 존경하고 따르던 시민들은 프라두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고, 등을 돌린다. 이 사건은 프라두가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책 속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멘데스의 부하들도 같이 병원에 들이닥쳐서, 멘데스를 살려내지 못하면 그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지 않았을까? 나는 의사일뿐, 법정의 판사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은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도 모두 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암울한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고, 고통받는 시민들을 응원하는 양심은 분명 마음 한 구석에서 잠시 모른척하면 그 누구도 모르게 멘데스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평생 큰 갈등을 겪어 본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 어느 하나의 결정을 해야 하니... 정말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런 갈등을 통해 주인공 프라두의 삶이 바뀌듯이, 우리들도 크고 작은 이런 결정들을 거치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4) 일탈. 기차가 그 길을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듯이, 일상에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롭다기 보다는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년의 그레고리우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비오는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생각된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으로부터, 어느 순간 운명적인 일탈이 이루어진다. 갑작스럽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통하지 않은 포루투갈로 가는 기차에 오르게 된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늘 그렇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꾼다. 다만, 일탈을 꿈꾸다가도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다가, 결국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주위의 누군가 훌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시작한다거나, 길게 휴가를 내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한다. 때로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뒷담화를 까거나, 뭔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도 해준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계획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럽게 일탈을 하게 된다. 정말 소설이나 영화이니 가능해보이는 그런 일탈~ 그레고리우스와 일면식도 없는 독자로서는, 멋지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주위에 있던 친구, 가족, 연인, 지인 등을 통해 이런 면, 저런 면에서 보면서 맞춰봄으로써,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또 다른 주인공 프라두를 조금씩 조금씩 더 잘 알아가고 이해해갈 수 있게 되고, 또 이런 과정 중에 그레고리우스 본인의 삶과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1999년에 독일 뮌헨에서 베니스까지, 또 뮌헨에서 프라하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일이 있는데, 이런 여행을 혼자서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주인공처럼 베른에서 리스본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1) 양대 주인공의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프라두. 그는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총명했는데,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 그 정도가 잉크까지 쪽쪽 빨아들여 책에 아무것도 남는다."라는 듯한 표현이 종종 나온다. '잉크까지 먹는다', '잉크를 빨아들인다'라는 유형의 표현은 어디에서 본 일이 없는 대단한 표현이지만, 이러한 묘사를 달고 사는 주인공 프라두는 얼마나 대단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집중력이 떨어져서인지, 책을 읽고 나서도 잊는 내용도 많고, 애시당초 놓치는 내용도 많다보니, 프라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2) 배경이 되는 포루투갈의 독재와 항쟁이다. 포루투갈에도 이런 독재가 있었던가? 인터넷을 찾아보니, 1974년 4월 25일 카네이션 혁명이라 하여, 40년 가까이 지속된 살라자르의 독재, 포루투갈의 식민지 탄압에 대한 반발로 청년장교들을 중심으로 무혈혁명을 성공시킨바 있었다고 한다. 혁명의 성공을 안 시민들이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나누어주고, 군인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꽃아 화답했다고 하니, 그 감동이 어떠했겠는가? 고인물을 썪게 마련이라고, 살라자르 독재시대에 권력을 가진 집단은 부정부패를 일삼았을 것이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을 것이다. 이런 탄압과 고문을 일삼던 비밀경찰의 대장 격으로 잠시 등장하는 '멘데스'. 우리나라에도 학생운동, 노동운동, 환경운동을 이끌고 참여한 사람들을 잡아다가 물고문을 비롯한 갖은 고문으로 불구를 만들고, 사람을 죽인 그런 정권의 '개'를 자처한 개같은 인간들도 있었지 않았던가?
3) 직업 윤리와 갈등~ 프라두가 진료를 마치고 잠을 자고 있는데, 응급환자가 있다고 한다. 모든 시민들이 그렇게도 싫어하고, 저주해 마지 않는 '멘데스'가 바로 그 응급환자. 잠시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 프라두는 응급조치를 취해 그가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이로 인해 프라두를 존경하고 따르던 시민들은 프라두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고, 등을 돌린다. 이 사건은 프라두가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책 속에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멘데스의 부하들도 같이 병원에 들이닥쳐서, 멘데스를 살려내지 못하면 그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지 않았을까? 나는 의사일뿐, 법정의 판사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은 아픈 사람,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이다. 또한 자칫 잘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내 가족도 모두 해를 입을 수 있다. 하지만, 암울한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고, 고통받는 시민들을 응원하는 양심은 분명 마음 한 구석에서 잠시 모른척하면 그 누구도 모르게 멘데스를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그레고리우스는 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평생 큰 갈등을 겪어 본 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짧은 시간 동안 어느 하나의 결정을 해야 하니... 정말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이런 갈등을 통해 주인공 프라두의 삶이 바뀌듯이, 우리들도 크고 작은 이런 결정들을 거치면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임에 틀림없다.
4) 일탈. 기차가 그 길을 벗어나는 법이 거의 없듯이, 일상에 변화가 거의 없는 단조롭다기 보다는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던 중년의 그레고리우스. 진짜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비오는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생각된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으로부터, 어느 순간 운명적인 일탈이 이루어진다. 갑작스럽게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말도 통하지 않은 포루투갈로 가는 기차에 오르게 된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늘 그렇고 그런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꾼다. 다만, 일탈을 꿈꾸다가도 이리 재보고, 저리 재보다가, 결국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리고, 주위의 누군가 훌쩍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시작한다거나, 길게 휴가를 내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한다. 때로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뒷담화를 까거나, 뭔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도 해준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계획이 아니라, 정말 갑작스럽게 일탈을 하게 된다. 정말 소설이나 영화이니 가능해보이는 그런 일탈~ 그레고리우스와 일면식도 없는 독자로서는, 멋지다.
한 사람의 삶을 그 주위에 있던 친구, 가족, 연인, 지인 등을 통해 이런 면, 저런 면에서 보면서 맞춰봄으로써,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또 다른 주인공 프라두를 조금씩 조금씩 더 잘 알아가고 이해해갈 수 있게 되고, 또 이런 과정 중에 그레고리우스 본인의 삶과 생각을 비교해보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1999년에 독일 뮌헨에서 베니스까지, 또 뮌헨에서 프라하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해본 일이 있는데, 이런 여행을 혼자서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주인공처럼 베른에서 리스본까지 야간열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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