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1920~30년대 미국의 소작농들은 아마도 아래와 같은 고물차에 살림살이를 싣고,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캘리포니아를 향해, 마음을 조려가며 삐거덕 거리는 차를 조심조심 다루면서 66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출처: http://www.cart66pf.org/)

규제를 받지않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한줌의 지주들과 금융자본들이 또 트랙터로 상징되는 기계화가 개걸스럽게 가난한 소작농들을 고향에서 내몰던 시절... 삶의 터전이던 땅과 그들의 아이,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내 살아오던 고향을 등지고, 갖은 것을 팔아 고물자동차와 약간의 돈으로 바꾸어, 일용직 노동자가 되어서라도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갖고 캘리포니아로 캘리포니아로 몰려드는 역경의 과정... 정작 비옥한 땅, 캘리포니아에 도착했지만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저임금속에 착취당하며 굶어 죽어가는 이야기... 이 소설의 배경이자, 소재이기도 하다.



그들의 유일한 꿈, 캘리포니아에의 도착. 그러나, 아무리 낮은 임금이라도 일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형편이고, 영양실조로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한 편에서는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익은 과일들을 버리고, 썪게 만들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하지 못할 부조리와 모순. 이런 부조리를 알면서도 나와 내가족을 위해 이주민을 이간질하고 폭행하는, 지주와 산업자본에 고용된 경찰과 일말의 무리들. 아름다운 땅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자본주의의 모습을 이주민의 눈으로 반복적으로 세밀하게 글로 보여주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며 과일을 먹고 싶어 하지만 ...... 산더미처럼 쌓인 황금색 오렌지 위에는 휘발유가 뿌려진다."

"사람들의 눈 속에 패배감이 있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수확기를 향해 점점 익어 간다." (25장 중에서)

사람들 마음속의 분노의 포도는 이렇게 익어갔건만, 그 결말은 굶주림 속에서 아이를 사산한 10대의 샤론의 로즈가 (누군지도 모르는) 굶주림에 죽어가는 중년의 남성에게 젖을 물리는 것이라니... 누군가는 감동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힘이 빠지고 맥이 빠지는 결말이다. 그래서, 어쩌라구? 어떻게 하자고?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고, 스타인벡은 공산주의자로 몰리기도 했다니, 이 참담한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타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Steinbeck National Center 전경 

소설이라는 것이 그럴듯하게 지어낸 즉, 허구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1920년~30년대의 대공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인터라, 이 책을 읽는 그 누구도 근거없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기위한 조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난쏘공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듯이... 

이 소설이 1939년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70여년 이상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떠할까?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오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보다는 미래가 나을 것이라고 믿고, 또 그래서 현재가 어렵더라도 참고 버텨낸다. 그런데, 근래에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미래가 과연 현재보다 나을 것인가를 의심하게 한다. 마치, 오키들이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캘리포니아에서 돌아오는 사람들과 66번 도로를 채우고 있는 이주민들의 행렬을 보면서, 과연 캘리포니아에 가면 좋은 일자리가 있을까?를 의심하는 것처럼...

한줄로 줄이면, 우리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너무나 심하다는 것이다. 평균의 함정에 빠져서 평균적으로 우리경제는 과거보다 많이 나아진 것 같지만, 정작 그 분포로 보면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Wealth Inequality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Wealth_inequality_in_the_United_States)

게다가 중산층은 얇아지고, 대다수가 경제적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한 번 떨어지고 나면 여간해서는 한계단 올라서기 힘들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처럼 빚내어 가며 어렵게 공부해도, 취직하기는 힘들고, 정작 취직하고 결혼을 해도 월급 모아서 미친듯이 오르는 전세값 대기에도 벅차고, 일자리에서 쫓겨나면 ... 이런 문제가 (개인의 뼈를 깎는) 노력 부족 때문일까?



폭발 직전까지 온 빈부격차 실태 (한겨레 신문 사설, 2014.11)

이 문제를 풀기 더욱 어려운 것은 우리나라만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의 불평등이 심하지 않으면서도, 어느정도 잘 사는 다른 나라가 있으면 보고 배우기라도 할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패턴은 더욱 심화되고 고착될 것 같다. 편리함, 안전함, 생산성을 우리에게 선물해오던 정보화와 자동화는 어느 순간 그 한계를 넘어 비약적 발전과 놀라운 확산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참고로, MIT Erik Brynjolfsson 교수가 쓴  Second Machine Age를 읽어보면 부정할 수 없는 Fact를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전세계의 공장 역할을 자임하며,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것도 옛말이며, 중국도 제조업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서비스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돈을 버는 사람이 있을 때에 돈을 쓰는 것도 가능한 것이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 돈 벌이가 줄어들게 되면 모든게 돌아가지 않는다.

소설설 소작농들이 트랙터를 원망하듯이, 멀지 않은 미래의 우리들도 자동화를 원망하게 될지 모른다.

"마침내 지주의 대리인들이 요점을 꺼냈다. 소작 제도는 이제 소용이 없습니다. 트랙터만 있으면 한 사람이 열두 가구나 열네 가구 몫을 해날 수가 있으니, (중략) "
"그러나 이 트랙터는 두 가지 일을 한다. 땅을 갈아엎는 일과 우리를 땅에서 쫓아내는 일" 

SF 영화를 보면, 미래의 모습으로 가진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며 높은 건물에서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심지어 유전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은 시궁창 같은 곳에서 헐벗고 살아가는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반란을 꿈꾸기도 하지만, 여지없이 로봇과 경찰들이 이들을 공격한다. (수백년이 흐른다 하더라도, 이런 극단적 모습이 우리 후손의 미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의 미래가 현재보다 나은 모습이기 되기 위해서, 아무리 아프더라도 빨리 우리의 제도를 뜰어고쳐야 한다고 믿는다. 상속세를 강화해서 대물림되는 재산의 불평등도 개선해야 하고, 투명한 과세와 함께 소득세도 올려서 삽질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에 돌려줘야 한다. 한 번의 잘못된 또는 재수없는 선택이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기회가 주어질 수 있는 안전망과 환경을 만들어가야 하고,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방자한 무리들과 그에 기생하는 정치인들로부터 우리와 우리의 이웃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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