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_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교수, 이 아저씨 정말 마음에 든다. 우울한 일이 있더라도, 이 아저씨 이야기를 듣다보면 울다가가 웃게 될 것 같다. 멋있는 척 폼 잡지 않고, 이런저런 유명한 사람들 이야기로 치장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는데다가, 진부하지 않은 유머 감각이 살아 있다. 깔때기처럼 본인 자랑으로 마무리해도, 잘난척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때로는, 딴지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누가 원조인지는 대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창조' 이렇게 멋진 단어를, 박모씨가 자기가 만든 것인양 떠들어댄 이후로 그 느낌이 영 개운치 않지만, 창조라 부르든 창의라 부르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당장 다음 세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세대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있으면 창의적인 순간이 찾아올까? 머리속으로는 다른 생각으로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끝장 회의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면 창의적인 순간이 올까? 너무 바빠서 창의적일 수 없다고들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럼 노숙자가 되면 창의적일 수 있을까? 또는 노숙자는 왜 창의적이지 않은 것일까? 라고 묻고 싶었다. 김정운 아저씨랑 생각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 중 하나는, "정보와 정보를 잘 엮어내는(=편집) 것" 이라는 것이었다. 머리에 든 것이 없는데, 엮으려고 해도 엮을 것이 없거나, 늘 뻔한 것들만 엮으니, 그 나물에 그 밥이 만들어지는 것일거다라는 것이다.
다음, 네이버, 구글 들어가서 뒤지면, 죽는 날까지 읽어도 부족한 자료들이 나온다. 잘 찾는 것도 중요하고, 많이 읽는 것도 중요지만, 읽은 것을 소화하고, 정리해두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저자가 유학시절에 독일학생들이 카드에 공부한 내용이나 생각한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을 보고 놀랐던 것이나, 연구소 한켠에 자리를 얻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짜고 관리해주면서, 결국 연구소에서 유급자리를 하나 챙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서 띵~! 이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옆에 카드는 안되어도 공책을 꼭 같이 두고는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 습관이 없어졌다.
이 책 읽고, 하나 건졌다. 한때 쓰다 말았었던, 에버노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 언젠가 보았던 그 언젠가 읽었던 그 자료, 그 그림의 환영 때문에 (발표자료 준비에 시간이 쫓기면서도) 구글링을 하고 또 하던 그 악몽같은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 하나 건졌으니, 책값이나 책 읽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이미 충분하다.
편집과 관련된 저자의 시각이 우리생활 곳곳을 훓는다. 지식과 지식을 엮는 것이, 수학 문제를 풀어가듯이 '='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아니고, 술취한 아저씨, 아줌마처럼 횡설수설하는 것도 아니어야 할 것이고, 그 본질을 콕 찔러서 굴비엮듯이 해야 할 것이다. 콩나물 하나를 가지고,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무침, 콩나물 해장국 등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재료가 '신선'하고, '다양'할 때에 보기에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재료를 여럿 갖는다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지겨운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음식을 이웃이 좋아하고, 친구가 좋아하면, 아싸~ 그것 하면 된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 나오는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부분에서, 토론이 안되고 일방적 강의가 되는 학교 강의실이나 이름만 회의실인 회의실은 우리가 빨리 바꾸어가야 할 환경이라 생각한다. 도라무통 뒤집어 놓은 위에서 삼겹살 구우며, 이야기할 때에는 그렇게들 이야기가 많고, 서로 동의도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자기 의견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술기운에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좋아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게 창조를 위해 필요한 환경이리라.
'남자의 물건'에도 나왔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느껴본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때 마침, 연말이라 (시간의 편집에 의해, 올해는 리셋하고, 내년에 새출발할 수 있으니) 더욱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몰라도, 좋은 시점에 좋은 책을 접하게 되었음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창조' 이렇게 멋진 단어를, 박모씨가 자기가 만든 것인양 떠들어댄 이후로 그 느낌이 영 개운치 않지만, 창조라 부르든 창의라 부르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가 아니라, 당장 다음 세대는 나중에 생각하더라도,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세대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있으면 창의적인 순간이 찾아올까? 머리속으로는 다른 생각으로 바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놓고, 끝장 회의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면 창의적인 순간이 올까? 너무 바빠서 창의적일 수 없다고들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럼 노숙자가 되면 창의적일 수 있을까? 또는 노숙자는 왜 창의적이지 않은 것일까? 라고 묻고 싶었다. 김정운 아저씨랑 생각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 중 하나는, "정보와 정보를 잘 엮어내는(=편집) 것" 이라는 것이었다. 머리에 든 것이 없는데, 엮으려고 해도 엮을 것이 없거나, 늘 뻔한 것들만 엮으니, 그 나물에 그 밥이 만들어지는 것일거다라는 것이다.
다음, 네이버, 구글 들어가서 뒤지면, 죽는 날까지 읽어도 부족한 자료들이 나온다. 잘 찾는 것도 중요하고, 많이 읽는 것도 중요지만, 읽은 것을 소화하고, 정리해두는 습관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저자가 유학시절에 독일학생들이 카드에 공부한 내용이나 생각한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을 보고 놀랐던 것이나, 연구소 한켠에 자리를 얻고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짜고 관리해주면서, 결국 연구소에서 유급자리를 하나 챙겼던 것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서 띵~! 이전에는 책을 읽으면서, 옆에 카드는 안되어도 공책을 꼭 같이 두고는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 습관이 없어졌다.
이 책 읽고, 하나 건졌다. 한때 쓰다 말았었던, 에버노트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 언젠가 보았던 그 언젠가 읽었던 그 자료, 그 그림의 환영 때문에 (발표자료 준비에 시간이 쫓기면서도) 구글링을 하고 또 하던 그 악몽같은 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 하나 건졌으니, 책값이나 책 읽은 시간에 대한 보상은 이미 충분하다.
편집과 관련된 저자의 시각이 우리생활 곳곳을 훓는다. 지식과 지식을 엮는 것이, 수학 문제를 풀어가듯이 '='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아니고, 술취한 아저씨, 아줌마처럼 횡설수설하는 것도 아니어야 할 것이고, 그 본질을 콕 찔러서 굴비엮듯이 해야 할 것이다. 콩나물 하나를 가지고,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무침, 콩나물 해장국 등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재료가 '신선'하고, '다양'할 때에 보기에도 좋고,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잘 다룰 수 있는 재료를 여럿 갖는다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지겨운 음식을 반복해서 먹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만든 음식을 이웃이 좋아하고, 친구가 좋아하면, 아싸~ 그것 하면 된다.
이전에 다른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 나오는 "공간의 형태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부분에서, 토론이 안되고 일방적 강의가 되는 학교 강의실이나 이름만 회의실인 회의실은 우리가 빨리 바꾸어가야 할 환경이라 생각한다. 도라무통 뒤집어 놓은 위에서 삼겹살 구우며, 이야기할 때에는 그렇게들 이야기가 많고, 서로 동의도 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자기 의견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다보면 (술기운에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좋아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게 창조를 위해 필요한 환경이리라.
'남자의 물건'에도 나왔었지만, 나의 이야기를 갖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느껴본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때 마침, 연말이라 (시간의 편집에 의해, 올해는 리셋하고, 내년에 새출발할 수 있으니) 더욱 이런 느낌이 드는지 몰라도, 좋은 시점에 좋은 책을 접하게 되었음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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