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의 시간

외관상 경제가 잘 나갈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위기"는 언제나 화두였고, "위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은,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외치는 양치기 소년과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적어도 2~3년 정도 전부터는 무슨 도구를 가져와 늑대를 쫓아야 할지,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했을 뿐이지, 한 두마리도 아니도 늑대 한 무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이 책 "축적의 시간"은, 서울공대에 재직 중인 26명의 교수들이 진단하는 "한국 산업 위기의 원인"과 "어떻게 이를 극복해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모은 것이다.



한 분 한 분이 각자의 영역에서, 많은 산업협력과 연구로 이름을 날리시는 유명한 분들이신터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저래 좋은 소리 내지 잔소리만 하는 이들과는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먼저 문제 이야기부터해보자. 이종동 교수가 먼저 발제를 시작한다. 1960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107달러였으며, 당시 아르헨티나 3,752달러, 멕시코 3,299달러, 터키 2,345달러 정도였다. 2014년 한국의 24,565달러(22배)로 성장하는 동안, 이들 국가는 2~4배의 성장에 그쳤고, 필리핀(1,649달러), 인도네시아(1,866달러), 말레이시아(7,304달러)도 큰 발전 없이 제 자리에 머물고 있다. 우리의 아버지 세대에서 일구어놓은 대단한 업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기업의 수익률과 거시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경제 및 전사업의 성장률이 골고루 매년 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하나의 대표기업을 보아도 그 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보다 제조업 생산성 면에서 앞서가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은 제조업의 부활을 위한 국가적 이니셔티브를 제창하고 있고, 우리의 코 밑까지 추격해온 중국도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제조업 업그레이드를 가속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의 제조산업 부가가치 생산액은 2014년 대한민국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6년에 와서는 13대 주력산업의 수출증가율은 모두 두자리수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여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위기, 그 원인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극복해야 가야 하는 것일까? 

공학이라는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영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석학들이 진단하는 원인과 해법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다. 대표저자 역할을 한 이정동 교수가 잘 요약을 해 놓았지만, 이를 재인용하느니 기억에 남는 것을 정리해본다.

사실 원인은 아래의 한 줄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단시간에 남을 것을 모방해서 성장하다보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밖에 얻을 수 없는 창조적 개념설계의 역량이 없다."
>> (이러한 역량이 없다보니,) 백지에서 무엇인가를 설계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아직 기술을 이전받지 못한 첨단기술 영역에서는 선진국에 눌릴 수 밖에 없고, 남의 것을 빠르게 베껴서 올라오고 있는 중국을 제끼기에는 쌓아놓은 실력이 많지 않다. M&A를 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기적적으로 창조력을 올려줄 수 있는 마법의 도구도 없으며, 돈 주고 살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오로지 남은 시간 동안 스스로 실력을 축적하는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시도하고, 실패와 성공으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 진부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격하게 공감할 수 있는 진단이다. 공학은 이론으로 무엇을 만들기보다, 만들어 가면서 이론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개량하는 것을 기본 속성으로 해 왔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그려보고 만들어보고 써보는 것이 실력개발을 위한 필요하다. 자동차, 선박, 화학공정, 전자제품, 소프트웨어 등 공학분야에서 다루는 모든 것들이 다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열심히 해서 몸으로 배우는 수 밖에 없다.

선진국들이 훌쩍 도망가고, 중국이 따라잡고 가기 전에,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창조적 개념설계의 역량을 우리도 쌓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A) 공대는 논문으로 평가하지 말고, 산업에 대한 기여로 평가해야 한다. 
>> 언젠가부터 해외저널에 등재되는 1논문의 건수로 학교, 학과가 평가되는 분위기로 변했는데, 공대는 논문 갯수보다는 산업에 대한 기여가 보다 중요하다. 현장에 정말 도움되는 연구결과는 특허나 논문으로도 내지 말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건만, 획일적인 평가는 피해야 한다. 공감한다. 

B) 엔지니어에 대한 우대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요즘 젊은이들이 겪고 있는 취업난 중, 그나마 공대가 인문계보다는 취업에 유리하다고는 한다. 하지만, 이 정도를 넘어서 행정업무에 치이지 않고, 전문성을 키워가면서도 일반 기업에서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C) 서울공대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 창업을 하고, 산업을 이끌어갈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
>> 학교/교수의 생각과 학생들의 생각이 동일할 수 없겠지만, 젊은이들이 모험에 뛰어들 수 있고, 이를 장려해주고, 실패하더라도 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주어야 하겠다. 모든 영역이 창업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지만, 적어도 창업을 통해 이끌어갈 수 있는 영역이라면, 이런 인재를 만들어내야 한다. 

D) 학교, 대기업, 중견기업(중소기업), 국책연구소의 역할 분담을 다시 해야 한다.
>> R&D투자는 GDP대비 어느 선진국에도 꿀리지 않지만, 그 효율 자체는 높지 않다. 정권이 바뀌어도 끊임없이 이어갈 중장기 과제와 단기 과제의 balance, 성과없는 과제의 퇴출과 교체, 중복된 연구기관과 과제의 통폐합, 대기업과 대학, 중견기업과 대학의 역할 분담 등이 새롭게 필요하다. (이해관계자가 여럿이니 복잡, 복잡한 문제이고, 이 바닥에 식견이 있는 분들은 차기 대선의 대선공약으로 넣어 이행되도록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
* 혼자 생각
 
각 공학 영역별로 몰랐던 기술분야에 대한 설명도 간간이 들을 수 있어서 주요 산업별로 우리의 경쟁력과 수준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의 순위가 유지되든, 뒤집히든 "창조적 개념설계"를 위한 역량을 계속 쌓아가야 할 것인데, 이 문제를 대학과 산업에만 국한하자니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a) 초등학교 때부부터 선행학습과 암기에 쩔여져 자라닌 아이들이 과연 창조적 개념설계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을까? 

b) 금수저, 흙수저의 계급론을 받아들이고, 뒤집어 엎기 전에는 발전의 희망이 없다고 바라보는 젊은이들에게 창조적 개념설계를 받아들이도록 만들 수 있을까? 
 
c) 이번 필진에 들어 있으시지 않으시지만, 이면우 교수님 생각이 난다.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 및 대안 제시를 해주시리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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